
비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들었다.
법정 스님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1991년 겨울.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겨울 밤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었고, 불과 12시간 후 학력고사를 남겨 놓고 있었다. 다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대학 입학 시험 전날 밤, 나는 내 방 책 꽂이에 꽂혀 있던 이 책을 집어들었다. 내가 산 책은 아니었고, 아버지가 사실만한 책도 아니다. 누가 그 곳에 가져다 놓았는지 모르겠는데, 내 방 책꽂이에는 이 책이 있었다. <텅 빈 충만> 이라는 책이었다.
잠도 오지 않고 더 이상 책을 파서 얻을 것도 없었다.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조급했다. 문득 이 책은 스님이 쓴 책이라고 했다. 나는 종교가 없었지만 막연히 스님이 쓴 책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좀 고요해지고 정신도 맑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책을 몇장 넘겼다. 결과적으로는 기대에 충분히 부합하는 책이었다. 마음이 아주 고요해졌고, 정신도 맑아졌으니까. 나는 그날 새벽까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까지 이 책을 덮지 못했다. 학력고사 전날 밤을 나는 이 책과 함께 보냈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위안을 준 이 책의 감동은, 그러나 학력고사와 후기 시험, 대학 입학을 거치며 옅어지고 잊혀졌다.
법정 스님을 다시 만난건 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지인의 추천을 받은 <무소유>를 집었을 때이다. 나는 <텅 빈 충만>의 감동은 진하게 남았지만, 법정 스님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텅 빈 충만>이 법정 스님의 책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무소유>에 <텅 빈 충만>에서 읽은 것과 같은 표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 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 <무소유> 中
이 표현을 보고 알게 되었다. <텅 빈 충만>을 쓴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것을. 그렇게 법정 스님을 만났다. 그 때 이후 법정 스님 책은 눈에 띄는 족족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놓친 것도 몇 권 있었겠지만 말이다.
덕이 깊으신 분은 떠나실 때 여러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가시나보다. 지난 양평 여행때, 용문사 바로 아래의 전통 찻집에서 법정 스님의 책이 눈에 띄였다. 오랜만에 스님 책을 한 권 사갈까 망설이다 다음 북 마일리지가 나오는 날 사기로 미뤄두었다. 절판 소식에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유를 배우고자, 절판 소식에 레어리티가 올라간 무소유를 구하려고 사람들은 아우성을 친다.)
스님은 글로 쓰신 그대로, 버릴 수록 채워지는 모습 그대로 가셨다. 흔한 관 하나 쓰지 않으시고, 수의 한 벌 입지 않으시고, 한 푼도 쥐어본 적 없는 수십억원의 인세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남기고 가셨다. 텅빈 충만을 읽은 밤 처럼, 마음이 조용하다. 그리고 먹먹하다.
부디 좋은 데로 가셨기를.
그리고 다음 생에서도 다른 이들의 영혼을 울리는 사람 혹은 존재로 태어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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