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작, <그림자 자국>. 실은 책이 나오자 마자 질렀었으나, 다른 짓들을 하느라 읽기 시작한건 한참이나 후였다.
이 한 권짜리 판타지 소설의 탄생에는 숨겨진 비화가 있다고 한다. <드래곤 라자> 출간 기념으로 단편을 하나 써달라고 편집자가 부탁했더니, 바로 건넨게 이 원고였다고. 책 한권 분량이 되고도 남을 원고였기에 편집자는 당연히 단행본 출판을 생각했을 것이다.
드래곤 라자에서 이영도는 참 여러가지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이야기가 실은 "관계"라는 하나의 주제에 엮인 여러가지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이종족, 인간과 드래곤. 그 하나 하나는 철학적 화두나 현실이 투영된 환타지 특유의 모티브를 담고 있었겠지만, 소설 전체는 "관계"라는 주제를 엮기 위한 알레고리였다. <드래곤 라자>,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가 책 제목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10년. 그 후 여러 작품에서 참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었던 이영도는 다시 "관계"의 <드래곤 라자>로 돌아왔다. 존재의 소멸을 관계의 소멸로 규정하고 이번엔 경제학자들 처럼 "가정"을 아이템화하여 지어낸 이야기 속의 소재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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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얼기설기 얼키다 보니, 중반부 이후는 읽기가 좀 난해해진다. 작가의 의도를 읽기는 커녕,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도 벅차다. 하지만 이영도식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에겐 그렇게까지 힘든 것은 아니다. 책 맨 앞의 일러두기에 그 벅찬 보물찾기를 위한, (무려) 범례가 공개되어 있다.
이야기 자체도 견고하지만, 역시나 "10주년 기념작"이라는 부제답게 팬서비스에도 충실했다. 소설 내내 넘실대는 추억속의 캐릭터 이름들을 접하며 가슴 두근거렸다. 서비스는 충분히 하고, 상상할 거리들을 듬뿍 제공하면서도 원작과의 거리는 철저히 유지하는 세련됨이 멋지고, 또 부러웠다.
참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평점 ★★★★☆
별 반개는 이영도의 포악한(...) 작가주의적 글 쓰기에 대한, 열등감 느끼는 팬의 감점이다. (웃음)
추신: 그리고 참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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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읽어봐야지. 이영도씨. 어흥.
저도 오랜만에(?) 환타지책을 사서 읽었어요.
놓칠듯, 그래도 희한하게 잡아지는 그런 얘기에 끌리는건지...
반가운 이름들은 설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