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2077년,

인류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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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BOX360용 폴아웃3의 표지. 일단 표지부터 암울하다...


랑둥넷 3rd Edition 최초의 게임 리뷰는 디벨로퍼스 컨퍼런스 선정 GDC Award 2009년 수상작인 폴아웃3 이다. GDC Award의 권위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포스팅에서 얘기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2007년 수상작은 에픽 게임즈의 기어즈 오브 워, 2008년 수상작은 밸브의 포탈이었다. (포탈에 대해서는 예전 2nd 시절에 리뷰를 한 적이 있었다.)

폴아웃1편과 2편은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블랙아일(Black Isle) 스튜디오가 만들었다. 블랙아일 스튜디오는 아이스윈드 데일,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등을 개발했던, 1990년대 후반 전설적인 RPG 전문 개발 스튜디오였다. (협력 관계였던 또 하나의 전설, 바이오웨어도 있었다. 발더스게이트 시리즈가 바이오웨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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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용으로 발매된 폴아웃2.

폴아웃3의 개발에는 재미있는 뒷 얘기가 있다.

원래 폴아웃3은 2003년경 실제로 진행된 적이 있는 프로젝트였다.

폴아웃 시리즈의 개발팀이었던 블랙아일은 인터플레이 산하 RPG 개발 스튜디오였다. 그들이 개발한 폴아웃1편과 2편은 호평을 받았으나, 인터플레이의 재정 상황은 좋지 않았다. 블랙아일 스튜디오는 2편 발매 후 3편의 제작에 착수하여 2003년경 폴아웃3의 개발을 90% 이상 진척했다. 최종 데모와 약간의 폴리싱(마무리 작업)만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인터플레이는 돌연 폴아웃3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블랙아일 스튜디오를 해체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완성이 코 앞이었는데 그들의 기분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 때 해고되었던 폴아웃3의 개발자들이 스튜디오 해체 후 인터플레이를 떠나 만든 회사가 네버윈터나이츠2를 만든 옵시디언이다. (1편은 바이오웨어가 만들었다. 해체 이후에도 바이오웨어와 블랙아일은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한 셈이다.)

어쨌든 이렇게 폴아웃3은 블랙아일의 <유작>이 되었다.

매니아들에게는 최고의 게임으로 꼽히지만, 영원히 묻힐 운명이었던 폴아웃의 이름을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한 것은 인터플레이도, 블랙아일도 아닌 전혀 다른 회사였다. 베데스다 소프트웍스. 엘더스크롤 시리즈 1~3편을 발매하던 시절엔 "괴상한 게임을 만드는 괴짜 스튜디오"로 인식되었지만 4편, 오블리비언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현재엔 굴지의 개발 스튜디오가 되어 있는 그 베데스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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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대히트작, 엘더스크롤4: 오블리비언.


오블리비언을 개발하는 한 편, 차기작을 모색하던 베데스다는 폴아웃 시리즈의 라이센스를 사기 위해 인터플레이와 접촉했다. 인터플레이는 기꺼이 폴아웃의 라이센스를 팔았다. (나는 이 소식을 듣기 전엔 인터플레이가 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블랙아일을 내놓고도 아직 살아 있었다니,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었던 거지? ㄱ- )

오랜 협상 끝에 2007년 인터플레이에게서 라이센스를 구입한 베데스다는 곧 폴아웃의 차기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하나의 여담인데, 위키피디아의 인터플레이 소개란에는, 2007년 인터플레이의 매출 586만 달러중 575만 달러가 이 라이센스비였다고 적혀 있다. 정말 구질구질하게도 살아 있나보다.

어쨌든 베데스다가 새로 가동한 이 프로젝트에는 당연히 3편의 이름이 붙었다. 물론 예전 블랙아일이 개발했던 폴아웃3 프로젝트의 코드나 리소스는 한톨도 쓰이지 않았을거다. 전혀 다른 게임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들의 유작이 부활하는 모습을 보며 전 블랙아일 스튜디오의 직원들은 기쁘기도, 착잡하기도 했을 것 같다.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자 이제 본 게임 ㄱ-
(어쩐지 본 게임보다 긴 잡설이었을 것 같은 슬픈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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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이후의 세계. 핵전쟁이 정말 일어난다면, 그 후의 세계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우선 배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자.

끝 없는 핵 군비 경쟁은 핵전쟁을 불러왔고, 2077년 핵전쟁으로 인류는 멸망했다. 대부분의 인류는 죽었고, 지상에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일부 사람들은 볼트(Vault)라 불리는 지하 방공호에 들어갔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났다.

인류가 핵을 발명한 후, 핵전쟁은 인류 멸망의 가장 그럴듯 한 시나리오, 혹은 그 메타포로 여러군데서 쓰였다. 여러 SF소설에는 꽤 오래전 부터 단골처럼 등장하는 배경 소재였고, 영화나 소설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후의 날, 그 후>는 아서 클라크, 로저 젤라즈니등 14명의 SF거장들이 그린 핵전쟁 이후의 세상에 대한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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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의 권도 실은 핵전쟁 이후 세계가 그 배경이다. 배경을 몰라도 읽는덴 문제 없지만...


비주얼적으로도 "진짜 그럴 것 같아"라고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배경 위에,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개발자들은 너무나 그럴듯한 리얼리티를 얹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리얼리티는 텍스트 안의 리얼리티, 즉 허구를 사실에 가깝게 만드는 장치들을 말한다.) 그리고 그 리얼리티의 해법이 베데스타 특유의 열린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구현되어 있다.

게임 시작과 거의 동시에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마저도 스포일러가 싫은 사람들을 위해 이 부분은 가린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릭)


다른 MMORPG 게임들의 퀘스트 백개를 하나로 압축한 듯한 농도로 만드는 베데스다 특슈의 퀘스트 기법도 건재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발전했다. 스토리텔링은 더욱 세련되어졌고 불편함은 줄었고, 연출은 더 깊어졌다. 아쉬운 것은 게임 볼륨인데, 50시간 정도를 플레이 하고 있는 현재, 스토리가 중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샌드박스 혹은 오픈 월드 게임에 메인 스토리 타임으로 타박을 할 생각은 없다. 마음 내키면 1천시간도 할 수 있는게 샌드박스 게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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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진행 방법은 기본적으로 오블리비언과 같다. 하지만 퀘스트를 하는 것 조차 선택이다. 샌드박스 만세.


거대한 월드에는 여러개의 마을이 있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술에 쩔어 사는 엄마 곁에서 욕만 배운 꼬마를 보며 탄식하고, 성직자를 사랑하기에 고백할 수 없는 소녀는 눈물로 일생을 보낸다. 어떤 남자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평화의 노래를 울리게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어떤 남자는 자신의 집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자신의 이름을 딴 공화국을 만든다.

방사능 돌연변이들에게 핍박을 받다 못해 그들을 악으로, 자신들을 선으로 규정한 어느 집단은, 방사능에 노출되어 단지 외형이 변했을 뿐인 이들고 함께 악으로 규정한다. 나(주인공)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기에 그들에게 도움을 받지만 외형이 흉칙해진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딜레마들이 이 게임 속에는 가득하다.

전쟁에 대한 경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안 주제 의식이 폴아웃3에는 있다. 이 게임은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철학적으로 질문한다. 약탈이 생존의 한 방식이 되고, 총격이 대화의 방식이 되는 환경에서, 윤리란 무엇인가? 방사능에 오염된 맛 없는 오트밀과,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은 깨끗한 사람의 살코기 한덩어리가 있다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오늘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해도 내일엔 죽을 사람들을, 오늘 구조해주는 것이 옳은가?

여담인데, 무거운 주제에 한 없이 눌리는 플레이어에게 <당신은 수준 높고 교양있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만족감을 주는 것이 폴아웃3의 장점이라면, 가볍게 즐기는 것은 어떻게는 쉽지 않다는 것이 이 게임의 단점이라 하겠다. 그게 폴아웃을 비롯한 베데스다의 게임들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주제 의식과 스토리라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조작과 게임 플레이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폴아웃3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동시에 제공하지만, 결국 1인칭 플레이를 거의 강제한다. (오블리비언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3인칭 플레이를 하면 떨어지는 몰입감을 못이기고 결국 1인칭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FPS와 비슷한 뷰에서 게임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베데스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세계관 상 폴아웃3은 칼과 마법이 등장하는 게임이 아니라 어썰트 라이플과 수류탄이 등장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것 때문이다. FPS 게임을 별로 플레이 하지 않은 전통적인 RPG 팬들에게 FPS의 조작을 어떻게 강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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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S 시스템. FPS를 훌륭한 턴제 RPG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폴아웃3에는 V.A.T.S 시스템이라고 하는 타겟팅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순간적을 시간을 멈추고, 적과의 거리, 엄폐물, 들고있는 무기등의 전략 요소를 고려하여 공격할 부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언뜻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 이 시스템은, 실제는 꽤 긴장감 있는 장면을 자주 연출한다. AP 라고 하는 공격 포인트가 있기 때문인데, 이 AP를 모두 소모하면 다시 공격 찬스가 올 때까지 나는 적을 피해 엄폐를 해야 한다. 물론 엄폐를 하는 동안 미리 설치해둔 지뢰 근처로 적을 유인할 수도 있고, 스팀팩이나 음식등을 이용하여 내 체력을 다시 회복할 수도 있다.

액션 RPG라 해도 빠지지 않을 전작 오블리비언에서 공방 연출에도 꽤 많은 신경을 썼었던 베데스다는, 타격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FPS 방식에서 이 V.A.T.S 시스템을 이용해 그럴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총기를 이용한 타격과 피격을 슬로우비디오 방식으로 카메라 연출을 하여, 그럴듯한 장면을 매번 만들어 주는 것이다. 피가 튀고 팔이 떨어져 나가고 몸이 쪼개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실은 고어함을 싫어하는 사람(나 처럼 ㄱ- )에게는 오히려 곤혹스러운 시스템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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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된 공방 장면. 플레이어가 미니건(소형 개틀링건)을 발포하는 장면.


GDC2008 세션들의 내용을 훑어보면, 대세는 오픈 월드, 대세는 파괴 오브젝트라고 한다. 젠장할 orz 게임으로 밥먹고 사는게 왜 이렇게 힘들어지는지 모르겠다 그 오픈 월드의 한 축에 있는 폴아웃3은 오픈 월드를 이용한 게임플레이의 극한을 구현한 게임이라고 하겠다.

전작 오블리비언을 능가하는 자유도, 더욱 세련되어지고 신랄해진 스토리텔링과 주제 의식. RPG 팬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대작이며 수작이다. 폴아웃3은 XBOX360은 물론, PC판과 PS3판으로도 발매되었다.

내 평점: ★★★★☆

별 반개가 빠진 것은, 오블리비언과는 달리 고어함과 음울함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플레이할 수는 없는 게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오블리비언이 10대 게임 안에 등극한 이래, 연속 두 해째 베데스다의 게임이 10대 게임에 들어간 것 같다. 조만간 인생 10대 게임을 다시 한번 정리해봐야겠다. ㄱ-






2009/05/04 12:18 2009/05/0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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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랑이 2009/05/04 18: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하지 않을, 아니 할 수 없는 게임(...)
    어째 오빠 플레이 하는 걸 (중요한 순간에만) 옆에서 알맹이만 쏙쏙 빼서 본 것 같은.. ^^;;
    아무튼 대단한 게임이고 생존과 관련한 철학적 주제의식도 깊이가 있었어요. 엔딩이 정말 가슴뭉클... ㅠㅠ (물론 수십.. 수백가지 엔딩중에 하나일 뿐이었겠지만;)
    아무리 멋진 게임이더라도, 나는 본 걸로 만족할래요. 너무 무셔... ㅠㅠ

  2. ohyecloudy 2011/10/04 23: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메가톤 날리는 거 해봤는데. 역시 나쁜 짓 하니깐 편하게 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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